[굿모닝인천]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윤성주
2018.02.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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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 것으로 치병굿하다
인터뷰 며칠 전, 사진가의 요구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무대나 연습실에서 직접 춤사위를 보여주실 수 있는지요.”
바로 답이 돌아왔다. “그건 곤란해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이다. 100미터 스프린터가 순전히 사진 촬영을 위해 트랙
밖에서 전력 질주할 수 없는 노릇, 그건 당연하다. “그럼, 검은 색 옷을 입고 만날 수는 있는지요.” “…….” 전화선으로 냉랭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윤성주(61)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는 지난해 5월 인천에 왔다.
‘전(前)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란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지역 무용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의 큰 관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인천문화예술회관에 있는 그의 방을 찾았을 때 그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연습실에 계시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은 지 15분 후에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은 그가 나타났다. “죄송해요, 평창올림픽 폐막식 때 우리 무용단이 공연을 하는데, 그 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얼마 전 그는 ‘신고식’을 했다. 지난해 11월 10, 11일 양일간 시립무용단의 제81회 정기공연으로 ‘2017 만찬-진, 오귀’를 무대에 올렸다. 인천에서 안무한 첫 창작 작품으로 큰 굿이자 재(齋)의 성격을 띤 무속 판타지 무용이었다. 이 작품을 본 필자의 지인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극장 밖으로 뛰쳐나와 참았던 긴 숨을 토해냈다고 했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굿 장단 음악 그리고 강렬한 조명, 무엇보다도 신들린 듯한 무용수들의 몸짓에 압도되었다고 했다. 그만큼 아주 ‘쎈’ 작품을 올린 것이다.
어쩌면 그는 ‘푸닥거리’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부임 직전까지 시립무용단은 크고 작은 일들로 삐걱거리며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일종의 치병굿이 아니었을까. 모든 걱정과 우려를 씻어내려는 제의(祭儀)이기도 했다. 감독 본인은 물론 모든 단원들에게 당분간 그것을 잊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이라도 한 듯 복도에는 또렷하게 서늘한 눈빛을 한 ‘오귀’의 주역 무용수 포스터 사진이 액자로 만들어져 여럿 걸려 있다.
사진가는 끝내 그를 무대 위에 세웠다. 춤사위는 없었다. 대신 그는 한 시간 가까이 텅 빈 대극장 무대 위에서 말없이 포즈를 취했다. 그의 표정에서 다양한 몸짓을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정(靜)이었지만 수많은 무대에 섰던 춤사위가 보였다. 희끗희끗한 사진가와 그 피사체가 된 여인을 멀찍이 떨어져 보면서 자꾸 시 한 수가 입가에 맴돌았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출처 / 굿모닝인천
사진 / 김보섭
글 / 유동현
[출처]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윤성주 | 작성자 온통인천